月刊 설화와 인물

2025년 1월호

역사 속 인물 곡성의 충절 소송 정재건 선생

2024년 12월 2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곡성 동악산 자락인 성출봉(형제봉) 북쪽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약내(藥川)라는 마을이 있다. 전망이 좋고, 언덕이 좌우로 감싸주어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소송(小松) 정재건(鄭在健) 선생이 태어났다. 1843년(헌종 9년)의 일이다. 송강 정철의 8세손인 정재건 선생은 정최환(鄭㝡煥)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민하였다고 한다. 선생이 네 살 때 일이다. 서당에 다니는 큰형이 어린 동생을 업고 서당에서 내준 숙제를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자의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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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인터뷰 前 여수문화원장 故 문정인 선생

2024년 12월 2일 편집부

「그저 한잔 하자는 자리면 / 젊은이도 좋고 늙은이도 좋은 / 무작정 즐겁기만 한 / 속없는 사나이 / 빈 속을 독한 술로 가득 채우고 / 껄껄껄 웃어대는 철삭동이 / 속없는 사나이」故 문정인 선생의 자작시 <속없는 사나이> 전문이다. 문정인 선생은 여수문화연구소(www.ysculture.com)라는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면서 여수 문화기행, 여수 향토자료, 여수 앨범, 여수의 전설 등 다채로운 향토이야기를 집대성하였다. 그가 이렇게 여수의 향토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7년부터 1999년까지 12년 동안 여수문화원장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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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오동도와 하이란 부부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의 상징인 오동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그 생김새가 마치 오동잎처럼 보인다고 해서 오동도라 한다. 한때 이순신 장군이 이 섬에 대나무를 심게 한 후 대나무가 무성하자 대섬이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하여 오동도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동나무가 무성하였던 아주 먼 옛날, 봉황으로 변하여 옥황상제의 심부름을 나온 사신 아홉 명이 남해 용왕을 만나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동도 위를 지나다 오동나무 열매를 보고는 모두 다 그 열매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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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쇠둠벙쏘와 구녕바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순천 서면에 있는 추동마을은 예로부터 순천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추동마을을 거치지 않고는 한양으로 가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은 추동마을이 하나의 통과의례였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추동마을 사람들은 원래 청소 쪽으로 약 300m쯤 떨어진 ‘괴샅’에 살았다. 괴샅은 ‘괴사터’의 줄임말로, 아마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호환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괴샅마을 사람들이 이무기를 쫓아버려 호환이 생겼다고 전해지는 쇠둠벙쏘. 근처에 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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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입에 물면 안 보이는 나뭇잎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벌교 어느 마을에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성이와 소붕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맨날 일도 안 하고 나무그늘에서 잠이나 자는 것이 일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두 사람을 내쫓아버리자고 이야기가 돌 정도로 그렇게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어느 해 초가을, 그러니까 8월쯤 되었는데 그날도 여전히 두 사람은 나무그늘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치가 깍깍 울었다. 아성이가 눈을 떠 보니까 나뭇잎이 떨어지더니 희한하게도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성이가 막 일어나자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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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옥룡사와 백룡거사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희양현(지금의 광양)에 날만 새면 간밤에 돼지가 물려갔다느니 소가 죽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어느 마을에는 괴질이 돌아 사람이 여럿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멀쩡하던 아들이 부모를 살해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마저 흘러나왔다. 새로운 현감이 부임한 전후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하여 민심이 흉흉하였고 조정에서도 감사를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니 현감이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현감이 측근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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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사연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 도무지 사람이 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데 여인들만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욱 언니! 나랑 빨래하러 가지 않을래?” 얼핏 보기에도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이야기하자 미욱이라 불린 여자 아이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답하였다. “아냐, 소연아. 오늘은 언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여자 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고 혼자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며 소리쳤다. “소연아!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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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능가사와 유구태자 보현

2024년 12월 2일 한국설화연구소

고흥 팔영산 밑에 있는 능가사(楞伽寺)는 419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5세기 초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보기에는 믿기 힘든 구석이 있다. 5세기 경 유물이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스님인 아도화상의 생존연대(3세기)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백제 말기 때의 일이다. 보현사 근처에 승아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바른데다 외모까지 곱상하여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자라면서 그 미모가 더욱 빛을 발하여 ‘임금은 몰라도 승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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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죽음으로 왕을 살린 신숭겸

2024년 12월 2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군신유의(君臣有義). 군주와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TV 광고에서 ‘의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 의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군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신숭겸 장군은 그래서 오늘날 의리의 대명사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고려 건국공신이자 죽음으로 왕건의 목숨을 구한 신숭겸 장군을 재조명한다. 신숭겸 장군 동상. 장군의 출생지인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에 있는 용산재 입구에 있다. 용산재는 1589년(선조 22년)에 창건하여 장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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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가 북적북적 설화는 살아 숨 쉬는 것

2024년 12월 2일 허석 한국설화연구소소장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이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후세에 전해집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이야기,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손자의 손자에게로 전해집니다. 설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의 대부분은 대를 이어 살아가는 곳의 지형지물이나, 그 고장 출신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대부분은 충효와 기이,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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