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함께 (108)

넘겨 보는 설화 경도 여(呂)씨 이야기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지금으로부터 약 6백여 년 전 고려 말 공양왕 때의 일이다. 어느 해 여름, 좀처럼 인적이 드문 여수 경도 외동마을에 배가 닿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얼핏 보기에도 예사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경도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사람들을 불러 성산에다가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금은보화를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마을 사람들은 집을 짓는 일을 하면서 평생 만져보기 힘든 돈을 벌었다. 성산은 선착장이 있는 외동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5리쯤 떨어진 내동마을 앞에 있는데, 해발 약 100m 정도 되는 나지막한 산이다. 일행의 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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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이십 년 된 쑥떡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예전에 벌교에 양씨 3형제가 살았다. 아들 셋이 가까이 다들 모여 사는데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그나마 먹고 살만 한데 둘째가 먹고 살기가 팍팍했다. 어렸을 적에는 형제간에 우의가 대단했는데 각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자기 아이들이 우선이요, 자기 마누라가 우선이어서 형제 사이의 우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제사가 돌아왔는데 둘째는 가진 게 없어서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다. “여보, 오늘 저녁에 우리 아버지 제사 아닌가. 그러니 제사 지내러 가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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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발포만호 황정록과 열녀 송씨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새벽 일찍부터 부산하다. 장수로 보이는 남편은 군장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고 아내는 그 뒷수발을 하느라 정신없다.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법한 어린 아이들 역시 잠에서 깨어 물끄러미 그런 엄마 아빠를 쳐다보고 있다. 한두 번 본 광경이 아닌 듯싶다. 황정록. 발포만호인 그는 부임 초부터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많은 해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오늘도 한산도 쪽으로 왜적 해군을 방어하기 위해 나선다. 왜적 해군을 방어하는 것은 왜적의 군량을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역할이었다. 남편과 아빠를 전장에 내보내야 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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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도술을 부리는 양맥수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도술을 부리는 양맥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광양 옥룡면 선동마을 전경. 지금부터 200여 년 전 광양 옥룡면 선동마을에 하동 정씨가 살았다. 정씨는 천성이 착하고 인심이 후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 한 명이 선동마을에 들어섰다. 처음 본 사람인지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걸인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행색이 초라한 것을 보니 먼 길을 온 것으로 보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는데 정씨가 선뜻 나섰다. “이보시오. 보아하니 먼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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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들리지 않는 천둥소리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조선 영조 때 순천 서문 밖에 정덕중이란 아전이 살았다. 어려서부터 부모 섬기기를 잘 하여 효자 소리를 들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모의 잠자리를 살폈으며 새벽으로는 문안 인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등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덕중의 부모는 그런 덕중이 오히려 걱정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도 내팽개치고 오로지 부모 섬기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섬겼는데도 어느 해 아버지가 그만 음허(陰虛)에 걸리고 말았다. 음허란 오후만 되면 한기가 들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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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부채혈과 조탑거리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옛날 구례군 용방면 송정마을에 선씨와 조씨가 살았다. 선씨는 부자였는데 반해 조씨는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사실 선씨는 특별히 노력을 해서 부자라기보다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그러나 조씨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으려니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씨는 욕심이 많아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고리대를 취하였다. 춘궁기에 겉보리를 빌려주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몇 배로 받는 것이었다. 더구나 탁발을 하러 오는 스님이나 동냥치에게 단 한 번도 적선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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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거북바위의 슬픈 사랑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곡성군 겸면에 가면 운교(雲橋)마을이 있다. 옛날에 칠봉과 하늘재를 잇는 높고 커다란 구름다리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운교라고 불렀다 한다. 운교마을 앞 냇가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거북바위에는 거북이 된 부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랜 옛날 운교마을 근처에 늙은 부부가 살았다. 언제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10대 때 만났다 해도 근 60년 이상을 해로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가리켜 말로만 듣던 백년해로를 할 사람들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당시에는 환갑을 맞기만 해도 장수하였다는 마당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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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우도의 정절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흉흉하던 어느 해, 고흥 어느 산골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가난에 쪼들려 살아 갈 길이 막막하였으나 선비는 오직 글 읽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자기 앞가림조차 하기 힘들 정도여서 장가를 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던 선비는 이웃마을 중신아비의 중매로 겨우 장가를 가게 되었다. 비록 가난한 선비였지만 기품이 있어 보여 그랬는지 그가 아내로 맞아들인 규수는 천성이 착하고 얼굴이 절세가인이었다. 알콩달콩 달콤한 신혼 생활도 어느 덧 3년이 흘렀다. 임진왜란도 끝나고 다소 평화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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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하늘도 감동한 효자 박윤하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도(巨文島). 청나라 정여창 제독이 거문도에 자주 상륙하여 섬 주민과 회담이 있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자 한문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뜻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하여 거문도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거문도에는 예로부터 명망 있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 가운데 귤은(橘隱) 김류(金瀏)가 가장 많이 알려졌다. 1814년(순조 14년)에 태어난 김류는 과거를 보려고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전라도 장성 땅에서 노사 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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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 보는 설화 숯 굽는 총각의 행운

2024년 12월 23일 한국설화연구소

일제 강점기 때 일이다. 어떤 총각이 보성에서 순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뭔가 펄럭거리며 날아왔다. 다른 기차에서 날아오는데 멀리서 보아도 신문지였다. 그래서 기차를 타는 동안 심심풀이로 보기 위해 날아오는 신문지를 잡아 쥐고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나서 펼쳐보니 도무지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영자신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닭발도 같고, 저렇게 보면 또 소발도 같고 그랬다. 그래서 이렇게 맞대보기도 하고 저렇게 맞대보기도 하면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아가씨가 송정에서 순천 가는 기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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